몇 년 전 생일날, 나비아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꺼냈다.
그날은 나비아가 성인이 되는 날이어서 그랬는지 게임에 참가한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생일의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자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점잖은 마르시악은 경솔하고 부주의한 의뢰인이 되어 자기 가문의 오래된 저주를 풀어달라며(혹은 같이 고통받자며) 모두를 모험으로 초대했다. 젠틀하고 맵시 있는 소니는 입이 거친 도둑으로 변신하기 위해 항상 입고 다니는 그 밝은 색 외투를 벗어던지는 큰 희생을 치렀다. 지나가다가 붙잡혀 온 긴장한 신참 실버는 강력한 힘을 지닌 신비로운 마법사로 거듭났다.
걸작이었던 것은 평소 마스터 역할을 맡았던 클로린드가 이번에는 「아가씨」라는 코드 네임으로 불리는 유명한 모험가와 「한패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그녀는 총을 쏘면 반드시 빗맞힌다는 백발무중의 의사로 등장했다. 누군가는 치료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 클로린드의 이유였다. 때문에 마스터 역할은 공석이 되었고,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칼라스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에 든 잔을 내려놓고는 관중석(한 켠에 놓여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선수들 사이(소파)로 이동했다.
이러한 시작에 나비아는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게임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아가씨의 생일 파티 자리에 침입한 낯선 의뢰인이 기가 막힌 판정으로 인해 3단 케이크에 얼굴을 처박아 질식사의 위기에 처해 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천 년을 내려온 가문의 저주를 5분 만에 자기 손으로 끝낼 뻔했다. 아가씨는 마음씨 좋은 의사에게 그를 도울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의사는 주사위를 굴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사람을 계속 살려두면 우리가 불리해질 것 같은데?
마스터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비를 맞으며 온 청년은 온몸이 젖은 채 두 손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신없이 얼굴과 몸에 묻은 크림을 닦아내었지만, 몇 군데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 사악한 저주와 맞서 싸우기를 선택해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중간 부분에서는 유난히 행운이 따라주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조사해야 하는 법이므로, 여기서 마술사는 가설을 하나 세웠다. 그것은 바로 의뢰인의 선조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주사위 눈이 조금만 더 높게 나왔으면 정확한 이유까지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마법사가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그 멍청한 선조 놈이 후손은 생각하지도 않고 고리대금 계약을 했다 이거지?」 도둑이 툭 내뱉듯이 말했다. 「그럼 계약서를 훔쳐서 없애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아가씨가 대뜸 물었다.
아직은 서툴렀던 마스터는 그 행동을 허용한 것을 아마 평생 후회하리라. 도둑의 행운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아가씨』의 지략은 뛰어났고, 『괴도』의 솜씨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쉽게 계약서를 손에 넣을 수 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그 위에 적힌 글은 거의 해독이 불가능했습니다…」
게임의 종반부는 뜻밖에도 상당히 부드럽게 흘러갔다. 마스터의 땀나는 노력과 그 선량함(그리고 미숙함) 덕분에 아가씨는 마침내 온갖 상태이상에 시달리고 있는 파티원들을 고대의 악마 앞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전투는 언제나 그랬듯이 혼란스러웠다. 마법사는 아니나 다를까 가장 먼저 정신줄을 놓아버렸고, 의사의 탄환은 역시나 단 한 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모두의 HP가 바닥을 향해 가던 그 순간, 모험가 아가씨가 움직였다. 그녀는 한 번의 행동 기회를 소모해서 악마의 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간신히 정면에서 오는 한 차례의 공격을 버텨낸 다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의사를 향해 외쳤다. 「그냥 날 쏴!」
마스터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의사는 주사위를 굴렸다. 주사위 눈을 계산해 본 칼라스는 세 번이나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탄환은 악마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었고, 그 커다란 몸은 심연을 향해 가라앉았습니다」
「그는 저주와 함께 암흑 속으로 돌아가 기나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갈채하라, 찬양하라! 모험가의 용기를, 그리고 그녀의 불운한 동료들을!」
회장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모두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홀로 소품을 정리하던 칼라스는 깜짝 놀랐다. 주사위 상자 속에서 황금빛 보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비아… 아무래도 이건 네 것 같구나」
그 자리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 신의 눈은 나비아의 것임이 분명했다. 그녀가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바위 원소로 이루어진 거대한 칼날이 나타나 생일 케이크뿐만 아니라 탁자까지 두 동강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늦은 밤, 생일 파티의 흥분을 가라앉힌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웠다. 하지만 신의 눈을 얻었을 때 자기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아무리 되짚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승리에 대한 생각? 아니면 앞으로도 생일이 올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전자라면 해피 엔딩을 위해선 반드시 고생을 해야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으니까… 그냥 후자인 걸로 하자.
이미 꿈속 세계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던 나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